서방파 김태촌은 1948년 10월 10일 전라남도 담양군에서 태어났습니다.
1960년대 후반부터 서울에서 폭력배로 활동하기 시작하였고 1970년대에는 서울을 중심으로 전국구로 성장하면서 범서방파의 두목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김태촌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걸쳐 대한민국의 폭력조직계를 주름잡은 인물입니다.
김태촌은 정치권과도 밀접한 관계를 유지한 것으로도 알려져있는데 1976년 신민당 전당대회 각목 난동 사건, 1985년 서울특별시 청계천 상인회 폭력 사건 등 정치적 사건에 개입하여 세간의 이목을 끌기도 했습니다.
김태촌은 1986년부터 1990년까지 4년간 수감 생활을 하였는데 출소 후에는 사업가로 변신하여, 건설, 유통, 금융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업을 벌이면서 서방파를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올린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김태촌은 2013년 1월 5일 심장마비로 사망하였지만 아직까지 한국 조폭 계보에서 입지전적인 인물로 꼽히고 있죠.
김태촌의 주요 범죄는 다음과 같습니다.
1) 1975년 명동 사보이호텔 사건: 조양은의 양은이파 조직원을 폭행하고 불구로 만듦
2) 1976년 신민당 전당대회 각목 난동 사건: 신민당 전당대회에 난입하여 각목으로 난동을 부림
3) 1985년 서울특별시 청계천 상인회 폭력 사건: 서울특별시 청계천 상인회 회장 선거에 개입하여 폭력을 행사함
4) 1990년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 위반: 폭력조직을 결성하고 활동한 혐의로 구속됨
화무십일홍.
하지만 제 아무리 화려한 꽃이라고 해도 항상 붉을 수는 없는 법이죠.
김태촌의 사망은 대한민국의 폭력조직계에 큰 변화를 가져오기 시작했습니다. 김태촌의 사망 이후 범서방파는 급속히 몰락하게 되었고, 조직폭력배의 위세는 크게 약화되었습니다.
김태촌의 싸움 실력에 대해서는 워낙에 전설적인 인물이라 레전드 일화가 많습니다.
김태촌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걸쳐 대한민국의 폭력조직계를 주름잡은 인물이었고 그는 조직폭력배로서의 잔혹한 행각으로 악명이 높았지만, 동시에 뛰어난 싸움 실력으로도 유명한 조폭이었습니다.
김태촌의 싸움 실력은 나이가 어린 젊은 시절부터 인정받아 왔습니다. 그는 1960년대 후반부터 서울에서 폭력배로 활동하기 시작했는데, 당시에도 이미 상당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고 합니다.
김태촌의 싸움 실력은 그의 폭력조직 활동에서도 드러났습니다. 그는 양은이파, OB파 등과 치열한 세력 다툼을 벌였는데, 이 과정에서 수많은 조직원들과 싸움을 벌였고, 대부분의 싸움에서 승리할 정도로 싸움 실력이 좋았다고 합니다.
김태촌의 싸움 실력에 대한 일화 중 가장 유명한 일화는 1975년 명동 사보이호텔 사건입니다.
당시 김태촌은 양은이파의 조직원을 폭행하고 불구로 만들어 버렸는데 이 사건이 알려지며 당시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고, 김태촌이라는 존재를 사회에 각인시키게 되었습니다.
김태촌의 싸움 실력은 그의 체격과 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김태촌 키는 프로필을 확인해보니 177cm, 몸무게 80~90kg의 건장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젊은 시절 격투기 선수 못지않은 힘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네요.
또한, 김태촌은 타고난 싸움꾼이었는데 어린시절부터 싸움에 대한 욕심이 강했고, 싸움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어 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성격은 그가 뛰어난 싸움 실력을 갖추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김태촌은 1986년과 1990년에 각각 4년씩 수감 생활을 하였는데 수감 생활 동안 그는 복싱과 유도 등 다양한 격투기 수련을 통해 자신의 싸움 실력을 더욱 단련했다고 합니다.
김태촌의 사망 이후, 그의 싸움 실력에 대한 평가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고 있습니다.
첫 번째 평가는 김태촌이 실제로 뛰어난 싸움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평가인데요.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김태촌의 폭력조직 활동 과정에서의 활약과, 그에 대한 일화들로 뒷받침되는 부분입니다.
두 번째 평가는 김태촌의 싸움 실력이 과장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평가는 김태촌의 폭력조직 활동 과정에서의 악행과, 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로 인해 실제 싸움능력이 과대 평가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어떤 평가가 더 정확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김태촌의 싸움 실력은 그가 조직폭력계에서 두려움의 대상이 된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김태촌 부인은 2016년 11월 김태촌과 옥중결혼하며 사회적으로 큰 화제가 되기도 했었지만 김태촌 아내 이영숙은 현재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하네요.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김태촌 부인은 1960~1970년대 활동하던 인기 가수였다고 하네요.
김태촌 와이프는 1949년 전라남도 광주시에서 태어났으며, 1968년에 '아카시아의 이별'이라는 곡으로 가요계에 데뷔한 이후 '꽃목걸이', '그림자' 등의 곡을 히트시키며 가수로서의 인지도를 쌓았지만 가수로서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였습니다.